L특급은 일본국유철도가 도입한 특급의 한 종류입니다. 운행 횟수가 많고, 출발 시각이 패턴화되어 있으며, 자유석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같은 목적지에 가더라도 경유지, 종점, 열차등급에 따라 열차명이 중구난방인 것을 통일했기 때문에 사용자의 편의성도 높였습니다.
급행열차의 폐지를 이끌고, 특급열차의 대중화를 이끈 중요한 열차입니다. 초장거리(예: 오사카-아오모리 등)로 특급열차를 소수 운행하는 패턴에서 벗어나, 수요가 많은 두 지점을 고빈도로 운행하는 것을 시도한 열차입니다. 이처럼 장거리 열차의 운행 패턴을 깔끔하게 정리를 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철도의 특급열차 운행 패턴을 확립한 열차입니다.
이 L특급이 나오기 전에는 장거리 열차는 어땠는지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그 다음 L특급의 등장과 소멸에 대해서도 소개하겠습니다.
L특급 등장 이전의 일본국유철도 장거리 열차
1940년대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급행, 특급열차가 전멸합니다. 이후 1950년대부터 서서히 급행, 특급열차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의 일본국유철도의 장거리 재래선 열차는 급행과 특급(특별급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차역이적고 비싸며 시설이 좋은 특급열차, 비교적 정차역이 많고 가격이 저렴한 급행열차였습니다.
원래 일본국유철도의 특급은 특별급행열차라는 말 그대로 특별한 열차였습니다. 1968년 기준, 급행요금에 비해 특별급행요금은 두 배 비쌌습니다. 일단 특급을 타면 아무리 조금 가도 400km에 해당하는 특별급행요금(2등석 기준 600엔)을 내야 했습니다. 말단부의 일부 단거리 구간에선 '특정특급요금'이 설정되어 있었으나, 이 요금도 400엔이나 했습니다. 당시 2등석 운임 기본요금이 20엔이었던 것을 고려하면(지금은 150엔) 상당히 높은 가격입니다.
신칸센에도 있던 자유석이 특급에는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있긴 있었지만, 일부 열차의 일부 구간에만 설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적게 타는 말단부에만 자유석 특급요금이 설정되어 있었고, 가격은 원래 특급요금에서 100엔만 할인했습니다. 사실상 단거리 고객은 특급을 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한편 급행열차(보통급행열차)의 급행요금은 100km까지 100엔이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했습니다. 400km까지는 300엔이었구요. 따라서 도시간 이동은 특급보다는 급행 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편수와 행선지도 급행이 훨씬 많았습니다.
장거리 열차 등급이 두 개로 나눠져 있었던 만큼 운행 패턴도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1968년 10월 당시에도 특급이 많이 다녔던 호쿠리쿠 본선의 마이바라-카나자와-토야마 구간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상/하행 각각 1호, 2호, ... 순으로 열차 번호를 매겼습니다)
- 타테야마 1호 (급행): 토야마행
- 시라사기 1호 (특급): 토야마행
- 라이쵸 51호 (특급): 카나자와행 (임시)
- 하쿠쵸 (특급): 아오모리행
- 쿠즈류 2호 (급행): 카나자와행
- 유노쿠니 51호 (급행): 카나자와행 (임시)
- 라이쵸 1호 (특급): 토야마행
- 유노쿠니 1호 (급행): 카나자와행
- 테카네 (급행): 나고야행 (토야마 경유)
- 키타쿠니 51호 (급행): 토야마 경유 아오모리행
- 유노쿠니 2호 (급행) :니가타행
- 라이쵸 2호 (특급): 토야마행
- 시라사기 2호 (특급): 토야마행
- 타테야마 2호 (급행): 토야마행
- 유노쿠니 3호 (급행): 카나자와행 (임시)
- 쿠즈류 3호 (급행): 카나자와행
- 타테야마 3호 (급행): 토야마행
- 쿠즈류 4호 (급행): 카나자와행 (임시)
- 유노쿠니 4호 (급행): 카나자와행
- 코라쿠엔 (급행): 카나자와행
- 라이쵸 3호 (특급): 토야마행
- 쿠즈류 5호 (급행): 카나자와행
- 니혼카이 (침대특급): 토야마 경유 아오모리행
- 키타쿠니 (급행): 토야마 경유 아오모리행
임시열차 및 침대열차까지 포함해서 마이바라 → 카나자와 열차는 총 24편입니다. 이 중 시라사기, 코라쿠엔은 나고야 출발, 쿠즈류는 마이바라 출발이였고 나머지 열차는 오사카 출발이었습니다. 크게 묶으면 오사카 출발 열차, 마이바라/나고야 출발 열차 두 개 계통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차 등급과 출발지, 최종 도착지별로 모두 열차이름이 달랐습니다. 지금은 오사카 발착 '썬더버드', 나고야/마이바라 발착 '시라사기'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복잡하죠.
이런 현상은 다른 노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차 등급과 출발지, 최종 목적지에 따라 열차 이름이 전부 다 다르다보니 같은 목적지로 가는 열차 이름이 여러개였습니다.
L특급의 특징
L특급이라는 명칭 자체는 1972년 10월 2일 시각표 개정에서 등장했습니다. 1972년 산요 신칸센 신오사카-오카야마역 구간이 개통하면서 이 시점을 기점으로 일본국유철도의 장거리 열차는 특급(L특급)으로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L특급의 L은 공식적인 의미는 없지만, Liner, Lucky, Lovely, Little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차량 횟수가 많고, 정시에 발착(패턴 다이어)하며, 입석(자유석)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특징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 수요가 많은 두 지점을 고빈도로 운행합니다.
L특급 등장 이전에는 초장거리 특급열차가 많이 운행했습니다. 따라서 도시 간을 이동하는 열차들의 이름이, 열차의 최종 도착지에 따라 중구난방이었습니다. 하지만 L특급은 수요가 많은 두 지점을 운행하도록 구간을 조정했습니다. 운행 구간이 비슷하면 행선지가 달라도 같은 이름을 주어서 여객이 시각표를 이해하기 쉽게 했습니다. - 출발 시각도 패턴화되어 있습니다.
"매시 OO분 출발"과 같이 출발 시각을 패턴화했습니다. 매 시 출발하지 않더라도 배차 간격은 균일합니다. (예: 2시간마다 출발) 굳이 시각표를 외우지 않아도 편하게 역을 찾아서 특급열차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L특급에는 자유석도 설정되어 있습니다.
L특급에는 자유석이 있어서 무작정 역에 와서 열차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거리를 이동할 경우애도 자유석을 이용하여 좌석지정요금을 아낄 수 있습니다. 지정석이 전부 매진되어도 꼭 이동해야 한다면 자유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전 열차 전동차로 운행합니다.
기존에 있었던 전기/디젤/증기기관차 견인 객차 대신, 신형 전동차로 운행을 개시했습니다. 디젤 기동차로 운행하는 구간에도 L특급 명칭은 붙지 않았습니다. - "특정특급요금"을 확대했습니다.
수요가 적은 단거리 구간, 말단 구간 위주로 특정특급요금을 설정해서 저렴하게 특급을 탈 수 있게 했습니다.
L특급 라이쵸가 신히키다역-츠루가역 사이를 달리는 모습. 일본국유철도 485계 전동차로 운행. 헤드마크에 ‘L’자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 (c) DD51612, CC-BY-SA 3.0 (link) |
L특급이 도입된 이후인 1980년 10월 호쿠리쿠 본선 (오사카/마이바라-카나자와 구간의 열차 패턴을 통해 추가 설명을 하겠습니다.
- 오사카-카나자와/토야마 (L특급): 라이쵸 (16왕복)
- 나고야-카나자와/토야마 (L특급): 시라사기 (7왕복)
- 마이바라-카나자와/토야마 (L특급): 칸에츠 (5왕복)
- 마이바라-카나자와 (급행): 쿠즈류 (4왕복)
- 오사카-이토이가와/토야마 (급행): 타테야마 (2왕복)
- 침대열차/야간열차는 생략합니다.
1968년 10월에 비해 패턴이 상당히 깔끔해졌습니다. 오사카발 열차(타테야마, 라이쵸, 하쿠쵸, 유노쿠니 등등)의 이름을 전부 라이쵸로 통일하고 운행 횟수를 늘렸습니다. 수요가 많은 오사카/마이바라/나고야와 카나자와/토야마 간을 고빈도로 열차를 운행합니다. 이제는 오사카에서 카나자와에 갈 때엔 "라이쵸"(현재의 "썬더버드")라는 열차 이름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열차 시각표도 패턴화되었습니다. 라이쵸 같은 경우 오사카역을 5분/35분에 출발하는 패턴입니다. 시라사기도 나고야역을 15분에 출발하는 패턴이며, 칸에츠도 마이바라역을 22분 또는 54분에 출발하는 패턴입니다.
L특급이 도입된 이후 상대적으로 특급요금도 부담이 줄었습니다. 1968년에는 특급요금이 400km 기준 기본요금의 30배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에는 특급요금이 400km 기준 기본요금의 20배 수준으로 내려옵니다. 1968년 기준 400km 급행요금이 기본요금의 15배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특급도 탈 만한 요금이 되었습니다. 100km 이하 특급요금도 설정되어 단거리를 특급으로 타는 경우 요금 부담이 줄었습니다.
단거리 구간에는 "특정특급요금"을 도입해서 더 저렴한 요금으로 특급열차를 탈 수 있게 했습니다. 큐슈 지역의 특급은 자유석을 이용할 경우 50km까지는 600엔, 100km까지는 700엔 등 특급을 저렴하게 탈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타지 않는 특급열차 말단 부분이긴 하지만, 일부 구간은 800엔만 내면 특급 자유석을 탈 수 있게 했습니다.
L특급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초중반에는 L특급의 수익이 신칸센 수익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급행열차의 소멸에 일조
JR에 실제로 운행하는 정기 급행열차가 없는 이유는 L특급 때문입니다. L특급 등장 이후 특급도 탈 만한 열차가 되었고, 장거리 이동 수요가 특급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안 좋았던 급행열차는 점점 인기가 떨어지고, 198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폐지되거나 쾌속으로 격하되었습니다. 큰 도시간을 운행하는 열차는 특급으로 격상되는 형태로, 중소도시간을 운행하는 열차는 쾌속으로 격하되는 형태로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L특급이 처음 도입된 1972년 이후, L특급의 운행 구간은 점점 늘어갔습니다. 또한 특급요금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절되면서 과거와 달리 특급열차도 탈 만한 열차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시설이 안 좋은 급행열차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급행열차의 시설은 현재의 로컬선 보통열차의 4인 박스시트 수준입니다. 장거리 이동시 이런 열차를 탈 바에야 돈을 조금 더 주고 특급을 타는 것이 나은 선택입니다.
L특급 때문에 급행열차가 줄어들면서, 급행형 차량도 통근/근교형 열차로 개조시키는데 일조을 합니다. 편의성이 로컬선 보통열차 수준이라서 장거리 이동에 부적합해진 급행열차는 통근/근교형 열차로 개조되어 보통 등급으로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급행형 전동차였던 455계도 나나오선 등에서 보통열차로 최후를 보내고, 지금은 에치고토키메키철도의 "관광 급행"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참고: 에치고토키메키철도, 국철 급행형 전동차 455계/413계를 이용한 관광 급행 운행 개시
L특급의 소멸
L특급 등장 이후 급행열차들은 특급으로 승격되거나 쾌속으로 격하되는 등, 열차의 운행 패턴이 변합니다. 결국 L특급과 일반 특급 간의 경계가 희미해져갑니다. L특급 뿐만 아니라 모든 특급열차에 자유석이 설정됩니다. 신칸센이 개통하면서 병행재래선의 특급열차는 폐지되고, 신칸센의 운행 패턴에 맞춰서 환승이 가능하도록 특급 열차가 운행하게 됩니다.
JR화 이후에는 L특급이라는 정체가 더더욱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특급과 L특급 간의 차이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각 회사마다 "L특급"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L특급 라이쵸는 국철형 차량인 481계로 운행했는데, 같은 구간을 신형 열차로 운행하는 특급 "썬더버드"가 등장합니다. 열차만 다르고 운행 패턴은 동일하지만, 라이쵸는 L특급이고 썬더버드는 그냥 특급이었습니다. "라이쵸"에만 L특급이 붙은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JR 홋카이도가 국철 시대의 L특급의 의미를 가장 잘 따랐던 회사였습니다. 근거리를 운행하고 전동차로 운행하며 자유석이 많이 설정된 특급열차를 L특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대상으론 삿포로-아사히카와를 운행하는 "카무이", 삿포로-무로란을 운행하는 "스즈란"이 있었습니다. 두 열차 모두 상대적으로 근거리를 운행했고, 1량을 제외하면 전부 자유석이였으며, 전동차로 운행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하지만 2017년 3월 시각표 개정으로 JR 홋카이도의 L특급 명칭이 폐지됩니다.
2000년대 들어 각 회사별로 L특급 명칭을 폐지하기 시작합니다. 2018년 3월에 JR 도카이가 "히다", "시나노", "시라사기"에 L특급 명칭을 제외하면서 L특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각 회사별 L특급 명칭 제외 일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 JR 동일본: 2002년 10월 ("시나노" 제외)
- JR 큐슈: 2009년 7월
- JR 서일본: 2010년 3월 ("시라사기" 제외)
- JR 시코쿠: 2011년 3월
- JR 홋카이도: 2017년 3월
- JR 도카이: 2018년 3월
비록 L특급은 폐지되었지만, JR의 특급 운행 패턴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사실상 모든 특급열차가 L특급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행 횟수가 적은 열차(예: 이나호 등)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특급이 L특급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행 패턴에 따라 열차명도 통일되어 있고, 출발 시각도 패턴화되어 있으며 자유석도 다 있습니다.
L특급으로 정시 출발에 구간별 합리적인 요금, 도착지 이름의 통일화까지 급속도로 철도 역사를 변화시킨 큰 계기가 되었겠어요.